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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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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보통과학자의 권리이자 의무는 '견제'
-김우재(하얼빈공업대학교 생명과학센터 교수)-
“늦었다는 건 없다. 늦었다, 늦어서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자기가 만드는 거다. 서른일곱 살에 처음으로 피펫(액체를 옮기는 실험 도구)을 잡았다. 연구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감사했다. 어느 인터뷰를 보니 올림픽 선수에게 ‘어부지리 1위와 최선을 다한 은메달 중 어떤 것이 좋은가’를 묻던데, 어부지리란 건 없는 것 같다. 어부지리로 결승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그는 자기 속도대로 계속 갔다. 앞에 있던 사람들이 우연히 다 넘어지긴 했지만 그도 최선을 다해 달린 거다. 나도, 다른 분들에게도 그런 순간은 언제든지 올 수 있는 거고. 따라서 늦은 건 없다. 참고 견디면서 일단 가야 한다. 뭔가를 하고 싶다면 그냥 가는 게 아니라 꿈을 향해 계속 가야 한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딱 10년을 살았던 것 같다. 이겨내고 계속했기 때문에 기회를 잡지 않았을까.” -박은정 경희대 의대 교수(경향신문 3월 20일자 '손소독제가 바이러스만 죽이는 게 아니다')
상위 1% 연구자는 아니지만, 필자도 늦깍이로 교수가 됐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연구자로 생존해야만 했던 박은정 교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IMF로 무너진 가정형편 속에서 풍족하지 않은 대학원 시절을 보냈다. 젊은 시절 고생한 이야기를 하면 꼰대라고 불릴테지만, 대부분의 대학원생이 자기 컴퓨터 하나쯤은 가지고 있던 시절에, 박사과정 내내 컴퓨터 한 대 없이 실험실 공용컴퓨터를 널뛰며 연구했다. 등록금을 제하고 나면 얼마 되지 않는 대학원 월급을 가끔 집으로 부치고 나면 돈이 없어 후배들에게 손을 벌려야 할 때도 많았다. 그래도 삼겹살도 먹고 술도 마시고 가끔은 비싼 레스토랑도 가며 살았으니 고생이라고 기억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닭장 같던 기숙사에서 살았지만 기숙사비를 내지 않아도 됐으니 좋은 환경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에서 대학원에 다니던 동료들은 꽤나 비싼 대학원 등록금까지 내며 다녀야 했으니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박은정 교수처럼 연구라는 꿈을 향해 오직 그 꿈을 향해 달리면 됐으니 힘들어도 참을만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실험은 잘 진행되지 않았고, 논문 한 편이 모자라 몇 년을 늦깍이로 졸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심각한 우울증에 걸렸고, 허리 통증까지 겹쳐 고생을 좀 했지만, 누구에게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남들은 5년이면 취득하는 박사학위를 8년 반이나 걸려 갖게 됐어도 그다지 불행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박사가 되고 나서야 좀 원하는 연구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나 훌륭한 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족했다.
되돌아보면 치열하게 살았지만, 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살지는 않았다. 그래서일까. 후배연구자들에게 “앞으로 무슨 역할을 할 건지 어떤 사람이 될 건지는 자신의 몫이다. 끝도 시작도 결정은 결국은 다 스스로 하는 것 아닌가.”라고 조언하는 박은정 교수의 말이 좀 슬프게 마음에 닿는다.
과학기술에 바탕을 둔 국정 의사결정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차기 정부의 대통령 당선자가 되었다. 과학기술인이라면 ‘윤석열 공약위키'에 쓰여 있는 ‘윤석열의 과학기술 혁신방향’이라는 짧은 글을 꼭 읽기바란다. 한국사회 과학기술인들도 한국의 주체적인 시민이며, 특히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과 관련된 과학기술정책의 수립과 시행과정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하루하루의 연구에 바쁜 보통과학자에게, 국가과학기술정책이란 먼 이야기일 수 있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통과학자들이 오직 연구에 매진해온 지난 수 십년간, 한국사회에서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지위는 결코 나아지지 않았고, 과학기술정책은 정치인과 관료들의 쇼비즈니스로 전락해버렸다. 그 덕에, 연구에 매진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보통과학자들은, 이들 정치인과 관료들이 저질러 놓은 배설물을 치우느라 연구할 시간을 빼앗기며 고생을 해야만 한다.그래도 국가과학기술정책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맥락을 외면한채 연구에만 몰두하면 된다고 여긴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책임감이 없는 이는 역사의 객”이라고 했다. “주인이 지키지 않는 집은 언젠가는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고도 했다. 보통과학자는 한국 과학기술의 주인인가 객인가. 한번쯤은 파이펫을 놓고 자신에게 물을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과학기술을 정책의 앞에 배치하며 등장했다. 한국의 과학기술인들은 정부의 정책시행을 감시하고 제안할 마땅한 의무와 권리가 있다. 윤석열 공약위키 홈페이지 제공
윤석열 정부의 과학기술 혁신방향은 지난 반세기 동안 현장의 과학기술인들이 줄기차게 정부에 요구해왔던 방향과 대부분 일치한다. 정치적 취향과 상관 없이, 현재 한국 과학기술계를 이끄는 세대에게 박정희 시대는 과학기술의 전성기였다. 그리고 소위 과학기술계의 리더라 불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한다. 박정희와 최형섭 초대 과학기술처 장관의 파이클럽이 이끌던 1960~1970년대는 국가주도로 과학기술이 기초를 갖추었고, 과학기술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중요한 시기였다.
원자력연구소로 상징되는 정부출연연구소가 과학기술계를 주도했고, 이후 1980년대에는 기업연구소들이 증가했고, 1990년대에 대학연구소들의 부상으로 한국 과학기술생태계는 정부출연구소-기업연구소-대학연구소 체제의 중첩된 구조로 완성되었다. 이 시기 최형섭은 박정희의 절대적 신뢰 속에서 과학기술계를 이끈 실질적인 리더였으며, 실제로 과학기술인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많은 정책을 이끌어나갔다. 최형섭은 박정희와 독대를 할 수 있는 과학기술계의 리더였으며, 박정희는 최형섭을 통해 직접 과학기술정책을 챙겼다. 과학기술계의 현 리더들은 바로 제왕적 대통령이 직접 과학기술을 챙기는 이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국가의 주요목표였던 산업화 시기였던 이 시기에 발판이 마련된 한국의 과학기술은 ‘국가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적 자원’이라는 국민적 동의를 얻은 반면, 역설적으로 ‘산업화와 경제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자원이자 도구’로 취급되는 반작용을 마주해야 했다. 한국의 과학기술이 국가 혹은 정치에 철저히 종속되어간 1960~1980년대의 패러다임은,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민주화로 뜨겁던 1990~2010년대를 지나면서도 전혀 변하지 않고 전승되었다. 군사독재 정권과 권위주의 정권은 물론 민주정부 모두에서 과학기술은 박정희 체제에서 성립된 국가주도의 도구적 관점 속에서 다루어졌고, 다루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이런 패러다임 속에서 과학기술인 모두가 일종의 국가적 인력자원, 즉 ‘과학기술인력’으로 취급된다는 점이다.
부정하고 싶겠지만, 한국사회에서 과학기술인 대부분은 국가안보를 위해 철저히 관리되는 군인들처럼 관리되고 있는 셈이다. 설마하는 생각이 든다면, 과학기술인처럼 오랜 기간 전문직 훈련이 필요한 직업군 중, 과학기술인처럼 철저히 국가에 의해 관리되면서 본인들의 권리를 위해 정부와 협상할 조직이 전무한 직업군을 찾아보면 된다. 의사에겐 대한의사협회, 변호사에겐 대한변호사협회, 간호사에겐 대한간호협회, 교사들에겐 교사노조, 심지어 공무원들조차 공무원노조가 있지만, 과학기술인 전체를 대변하는 협회나 노조는 없으며, 과학기술인을 대변한다고 자처하는 조직인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나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은 단체들의 협의체이거나 과학기술인의 이익단체가 아닌 시민운동 단체일 뿐이다.
과학기술이 국가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위해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인 정책이 실행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권력의 주체이기도 한 국민을 국가발전을 앞세워 관리하는 도구로 삼는 일은 헌법을 위배하는 일이다. 따라서 과학기술계는 윤석열 정부가 신설할 과학기술위원회가 박정희 시대의 권위주의적 조직과 반드시 달라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과학기술위원회는 과학기술인이 국가발전의 도구로 관리되던 패러다임에서 과학기술인 스스로가 국가발전을 이끄는 주체로 독립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보통과학자들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을 눈여겨 봐야 한다. 물론 자신이 국가의 노예가 되느냐 주인이 되느냐의 문제가 심각하게 와닿지 않는다면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 과학자가 가져야할 미덕의 전부라고 믿고 살아도 괜찮다.
보통과학자가 행복한 연구환경을 요구해야 한다
필자도 늦깍이로 과학자가 됐지만, 한국 또한 늦깍이로 과학에 입문한 나라다. 19세기 중반, 일본이 네덜란드에서 난학을 배워 민간으로부터 서양과학의 수용을 시작했다면, 한국의 19세기 중반은 세도정치와 뒤이은 쇄국정책으로 나라의 문을 걸어잠그고 더더욱 보수적인 유학적 세계관 속으로 잠식되어 갔다.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으로 과학기술의 씨앗이 생기는가 싶었지만 1910년 나라는 망했고, 일제는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고급학문인 과학기술을 익힐 기회를 거의 주지 않았다.망한 나라 조선의 인문학적 토양 속에, 식민지의 지배층은 법학이나 의학을 전공으로 선택해 보신주의에 잠식되었고, 그나마 일본과 미국으로 유학했던 지식인 계층조차 과학기술이 아니라 당장 식민지에서 관료가 되기에 용이한 학문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비겁한 지배층이 자기 살길만 찾을 때, 몰락한 양반과 중인계층에게 남은 선택지는 이공계 관련 학문 뿐이었다. 먹고 살려면 기술을 배우라는 말은 이 때 생긴 말이다. 그렇게 서양이나 일본처럼 엘리트층이 아니라 평범한 보통사람들이 경성공업전문학교로, 대동공업전문학교로 입학한 것이 한국 과학기술 1세대의 탄생이었다.
해방공간에서 이공계 박사는 10여명, 과학기술을 대학 수준 이상으로 공부한 조선인은 400여명에 불과했다. 부족한 숫자였지만, 과학기술인들은 과학조선이라는 목표를 위해 조선학술원, 조선공업기술연맹 등을 결성하며 새로운 조선을 건설하는데 기여하고자 했다. 정치적 격동기였던 해방공간이었지만, 과학기술이 새로운 국가의 핵심과제임을 의심하는 정치세력은 없었다. 그 점은 현재의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해방공간의 과학기술인들은 국가건설의 주체세력임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었고, 국가의 지배를 받기보다 나라를 주도하는 세력이고자 했었다. 망한 나라 조선의 국가철학은 주자학이었고, 서양의 과학기술로 근대화된 해방공간의 조선인 과학기술인들에게 새로운 조선은 유교가 아니라 과학을 중심으로 건설되어야 하는 나라였다. 따라서 이들 대부분이 진보적이며 정치적 좌파였던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해방공간에서 과학자 사회의 이념적 모색을 연구한 김동광 고려대 연구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해방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짧은 시기 동안 우리 과학자 사회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양한 단체를 조직했고, 나름의 내용성을 형성하려는 적극적이 노력을 경주했다. 이 과정에서 이념은 중요한 역할을 했고, 진보적인 과학기술자들은 단지 정치 이념에 수동적으로 휩쓸린 것이 아니라 이념적 경향성을 과학의 내용으로 만들어내려고 시도했다.”
윤석열 정부는 ‘정치적 목적으로 과학기술정책을 흔드는 사태를 원천 차단’한다는 점을 혁신방향에 분명히 명시했다. 이념과 정치색에 따라 과학기술정책이 왜곡되는 행태를 막겠다는 뜻이다. 한국의 과학자사회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과학기술정책이 ‘정치인’의 목적으로 흔들리는 파국을 막고, 오직 과학기술의 진보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 축조될 수 있도록 감시하고 제안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윤석열 당선인도 과학기술에 관한 한 아마추어임을 잊으면 안된다. 현장의 연구진이 과기정책 수립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공언한 윤석열 정부의 공약이 얼마나 지켜지는지 반드시 지켜보고 대응해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기본적인 기조 속에서야 윤석열 당선자이 공약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연구환경 조성”, “미래 선도할 연구, 10년 이상 장기지원”, “청년 과학인들 위한 도전과 기회의 장 마련” 등의 세부공약이 달성될 기초가 마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과학자가 연구에만 매진하며 사는 사회가 건강한 것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보통과학자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가 과학기술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보통과학자의 행복한 삶을 지키기 위해선 적어도 과학기술정책이라는 정치적 영역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으면 안된다. 민주주의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가 선거와 직접민주주의를 통한 정치적 참여인 것처럼 보통과학자의 권리이자 의무 또한 정치인과 관료들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저해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것임을 잊어선 안된다. 제발 이번 정부에선 최소한 보통과학자들의 행복이 보장될 수 있는 기초적인 제도가 마련되길 기원한다.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동아사이언스(2022.03.24),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5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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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다를 때
-최인철(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가, 잘하는 일을 할 것인가?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되풀이되는 실존적 고민이다. 어떤 일을 좋아하면 잘할 가능성이 높고, 잘하면 좋아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 둘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특별히 못 하는 일은 아니지만 전혀 가슴이 뛰지 않는 일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그 고뇌와 갈등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도 좋아하는 일이건만 원하는 만큼 실력이 늘지 않아서 힘들어해 본 적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이 둘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일치하지 않는 실존의 비극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어떤 이는 “좋아하는 일을 택하면 평생 하루도 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라는 말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권한다. 스티브 잡스 역시 “위대한 성취를 이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좋아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좋아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인 ‘자율성’을 만족시키는 통로이니 크게 공감이 가는 조언들이다.
다른 한편, 인간은 어떤 일을 잘했을 때 동반되는 ‘유능감’을 경험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지니고 있다. 열등감이 얼마나 우리를 괴롭히는지에 관해서는 이미 수많은 증거들이 축적돼왔다. 따라서 잘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반대편의 이야기에도 수긍이 간다.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 않더라도 당장 어떤 일이든 있기라도 하면 좋겠다는 젊은이들에게는 당장은 사치스러운 고민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둘 사이의 줄다리기는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될 딜레마이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행복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그들의 선택 기준에서 어떤 힌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에서 일련의 연구들을 수행한 적이 있다.
대학생 참가자들에게 어느 일자리를 소개하면서 그 일이 참가자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런 후에 본인이 그 일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어느 정도나 중요한지를 물었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그 일이 본인이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고 알려주고, 본인이 그 일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물었다. 흥미롭게도, 두 경우 모두에서 행복감이 낮은 학생들이 행복감이 높은 학생들보다 자신이 그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했다. 행복감이 높은 학생들은 그 일을 자신이 좋아하면, 잘하는지 여부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 일을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는 애초부터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 흥미로운 결과는 그 일자리가 본인이 잘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알려주고, 본인이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아는 것이 자신의 결정에 어느 정도나 중요한지를 물었을 때 나타났다. 행복감이 높은 학생들은 이 경우에도 자신이 그 일을 좋아하는지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했지만, 행복감이 낮은 학생들은 자신들이 잘하지 못하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보고했다.
사람들이 일상적 활동에서 얻는 행복감이 그 활동을 좋아하는 정도와 그 활동을 잘하는 정도에 의해서 얼마나 결정되는지도 알아보았다. 하루에 몇 차례씩 모바일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설문을 작성하는 그 순간에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그리고 그 일을 통해 느끼고 있는 즐거움과 의미의 정도를 보고하게 했다. 분석 결과 역시 앞선 연구 결과를 지지해주었다. 회의, 대화, 운동과 같은 일상적 경험을 하고 있는 그 순간순간의 즐거움과 의미는 그 일을 잘한다고 느끼는 정도보다 그 일을 좋아한다고 느끼는 정도에 의해서 훨씬 크게 좌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어떤 일을 잘하는지 여부가 행복에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과 잘하는 일을 하는 것은 양보할 수 없는 행복의 다이나믹 듀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 성적, 성취를 중시해온 우리 사회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사치로 치부하면서, “사람이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고 끊임없이 가르쳐왔다.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사람을 이기적이라거나 독특한 사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 혹은 먹고살 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봐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좀 더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어른스러운’ 조언이 들려올 때마다, 늘 잘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도 없다는 자기만의 주문을 외워야 한다. 그것이 자기다움의 삶과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중앙일보(201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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